Creators: Gary Bradnick.

Photography Daniel Bright
Essay writer Daniel Bright
Interview Joshua Bright

개리(Gary)와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 그래너리 스퀘어(Central Saint Martin’s Granary Square) 캠퍼스의 넓은 공개 홀(open hall)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기념비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었다. 150년이 된 건물로, 런던 킹스 크로스 세인트 팬크래스(London’s King’s Cross St Pancras) 통합정거장(joint-station)을 포함 대규모 재개발 인프라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가디언, 유투브를 포함 영국 산업을 선도하는 젊은 인재(player), 기술 인재 그리고 성장-주도 인재들이 유입되는 곳이기도 하였다. 개리는 금발이고, 호리호리한 체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차분하고, 세심한 느낌을 주는 한편, 그의 인상에서 강렬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이러한 강렬함은 대화에서 느껴진 침착한 열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손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는 손으로 넓은 호를 그렸다. 호는 이마를 지나고 그리고 우리 머리 위에 있는 큰 천창을 통해 발하는 빛을 포착하였다.

개리는 10년 전, CSM’s UAL의 자매학교인 런던 칼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을 졸업하였으며, 그곳에서 디자인, 광고학 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는 당시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개리 스스로 식자, 레이아웃 등에 흥미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오늘날 그에게서 볼 수 있는 에너지는 그때 이미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몇 개의 음악 나이트 클럽(club night)을 시작했다. 그라임(grime), 덥스텝, 영국 개러지 음악이 포함되었는데, 당시 그의 고향인 스티브니지(Stevenage)에서 시작된 강력한 음악 장르 일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또한 레게, 루츠(roots), 더브와 정글도 포함되었다. 당시는 뉴 레이브(New Rave) 시절이었다. 모두가 밝은 색 그리고 굵은 글씨로 된 프린트를 입고 다녔다. 그는 쇼트 백 앤 사이즈(Short Back and Sides) 그리고 캐시포인트(Cashpoint)라는 두 개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였다. 둘 모두 댈스턴(Dalston)에 있었는데, 오늘날 대변되는 세련된 아트 허브와는 매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핑크 골드(Pink Gold)라는 이벤트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패션쇼와 패션 네트워크의 밤(networking night)을 하였죠. 가장 멋진(biggest) 일은 라운드하우스[캠든(Camden)에 위치한 아트 센터]에서 개최한 3일 페스티벌이었죠. 25세 이하 불특권층 청년들이 자신의 재능을 드러낼 수 있게 한 행사였습니다. 멋진 행사였습니다. 거물 아티스트가 출현하기도 하였죠. 그런데 저는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약간 어렵다고 느꼈고, 그리고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그는 유스 클럽(Youth Club)이라는 젊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 일을 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개리는 포토 유스 뮤직 컬처 아카이브(Photo Youth Music Culture Archive)에서 일하였는데, 거기서 개리는 테디 보이스, 펑크, 락커스와 같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가 벤치에서 벗은 다음 자신의 옆에 둔 가죽재킷에 주목하였다. 재킷은 검은색으로 되어 있으며, 흰 글씨가 있었다. ‘아버지가 60년대 입으셨던 재킷입니다. 여기에 쓴 글씨는 80년대 형이 쓴 글씨입니다.’

한편 개리는 언제나 패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패션에 대한 관심은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발달하였다. 그리고 그가 피 도란 앳 미시즈 존스(Fee Doran at Mrs Jones)에서 근무하면서, 패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연마되고 그리고 예술적인 방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는 20대 후반 라파(Rapha)에 참여하였다. 라파는 디자인 중심의 사이클 브랜드로, 그는 2017년 말 회사를 떠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예술 디렉터(Artistic Director)로 근무하였다. 개리는 젊었을 때부터 BMX 바이크 그리고 더트 점핑(dirt jumping)을 좋아하였으며, 심지어 나이트클럽을 하는 동안 자전거 정비공을 하기도 하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2005-2009년은 자전거 매장에 있어 정말로 특별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래험 래번(Graham Raeburn)도 참여하였습니다. 영국왕립예술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이후에는 라파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사이클에 대한 애정을 갖고 라파에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작은 자전거 가게에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이 참여하였습니다. 키엘 로저스(Kiel Rodgers)도 참여 했었습니다. 키엘은 최근 멜버른 영 패션 디자인 어워드(Young Fashion Design Award)를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제레미 스콧 그리고 Comme des Garcons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는 현재 자신만의 일을 하고 있는데, 개러지 TV라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어쨌든 라파는 기업 환경을 대표하였으며, 개리는 어떻게 하면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과도기에 대해 물었다.

‘저는 노동자가정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삶에서 진정으로 성공하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전략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비즈니스의 성장에 그러한 태도를 적용한 일은 없었습니다.’ 한편 라파에서의 근무는 차가운 기업 세계의 기계적 전략을 판매하는 것에 해당하지 않았다. ‘저는 라파를 사랑합니다. 여전히 가족과 같습니다. 여전히 저는 라파와 창의적인 결과물(output)에 대해 말하고, 여전히 가끔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이는 개리가 창의성을 추구하는 뿌리가 되었는지 모른다. 학습의 성과와 불과분의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와 같은 곳에서 MA를 추구하지 않는다.

‘저는 작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큰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라파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는데, 그때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습니다. 저는 굿후드(Goodhood)에 채용되었습니다. 굿후드에서 카일 스튜어트(Kyle Stewart)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 잘 지냈습니다. 굿후드에서 저는 크리에이티브 감독(director)이 되었습니다. 업무 성과는 제법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깨닫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마음 뒤편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32세였으며, 여전히 소매(retail)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언제나 MA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놀라운 결정이었죠.’

개리에 따르면, 패션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포트폴리오에서 그 사실을 인지하였고, 교차-협력의 경험을 경험하였다. 또한 창의적인 질문을 하기는 하였으나, 전자상거래의 특이함은 없었다. 개리는 현재 부인과 함께 브랜드를 시작하고 있다. 그의 부인은 신발-디자이너였다. 그는 이미 비즈니스 계획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였다. 비즈니스 계획에서는 기금을 확실히 확보하고, 연말에는 전시회를 개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전시회가 열릴 경우, 6명의 젊은 한국인 신발-디자이너를 선보이게 된다. 개리에게 있어, 협업을 통해 창의적인 가치를 전시회에 소개한다는 것은 선경지명적인 접근방식이다. 이번 사례에서는 카피-캣 캣-워크 문화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는데 있다. ‘전 세계는 대한민국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스타일에 기인합니다. 한국과 같은 의상 스타일링을 보이는 경우는 없습니다. DIY 패션의 완전한 하위 문화가 존재합니다. 슈프림(Supreme)과 같은 브랜드가 없다면, 한국인은 가짜 제품을 사지 않고 슈프림의 영향을 받은 자신만의 의상을 만들 것입니다.’ 필자는 개리의 한국 여행에서 영감을 느꼈으며 그리고 세대차이의 경험에 대해 논의하였다. 중년과 노년은 펑크 하위문화에 참여하지 않고, 부동산(land)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현재는 사상가 그리고 창조자의 세대로 들어갔습니다. 이들 사상가와 창조자들은 많은 건물의 문을 두드리고 그리고 새롭고, 흥미로운 건물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와 함께 묘사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두가 참여한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집에 가까워 왔을 때, 개리는 어디에서 예술적 그리고 창의적 영감을 발견하였는가? 맨 처음 스티브니지는 독특한 장소이다. 많은 것을 목격할 수 있으며, 현재는 새로운 관점 그리고 시각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개리는 ‘누군가의 대답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구성요소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일종의 인류학적 개념의 관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장소는 무엇을 통해 만들어졌을까요? 건축 양식일까요? 모든 것이 콘크리트라는 사실일까요? 아니면 사람일까요? 제가 언급한 건축양식, 콘크리트 그리고 사람이 이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개리는 연말 전시회에 참여한 디자이너 여섯 명에게서 비슷한 영감을 보았다. ‘저는 엘리펀트 & 캐슬(Elephant & Castle), 댈스턴(Dalston), 페캄(Peckham) 등에서 나타난 디자이너의 작품 영감에 주목하였습니다. 일부는 아마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현실적인 레벨에서, 런던은 개리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만나고,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는 장소이다. 개리는 런던이야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데 최고의 장소라 했다. ‘그 점에 있어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라 하였다. 물론 다른 도시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셰필드에서는 크리에이티브 허브, 예술 쿼터(artistic quarter)의 출현을 볼 수 있다. 그는 그 부분에서 ‘셰필드는 런던과 연결되어 있고, 런던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라 하였다.

학습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멋진 학습의 전당이라 할 수 있었다. 이곳은 복도를 지날 때 그리고 계단을 지날 때마다 산업화된 예술 작품 사이를 거닐었다. 전등의 모양부터 먼지가 쌓인 학교까지 모두 그러했다. 그 순간 필자는 새로운 것, 밝은 것, 생동적인 것, 젊은 것 그리고 창의적인 것에 대한 개리의 탐구가 무엇인지 인지하였다. 이러한 탐구는 종종 파트너십,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참여적이고 그리고 매우 영감있는 남자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 그리고 매우 가치가 있는 부분에 해당하였다.

‘저는 진실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상당히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교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제가 반드시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확실히 협력자입니다.’

Gary sits across the table from me overlooking the vast open hall at Central Saint Martin’s Granary Square campus. It is a monumental building, over a century and a half old, and has been the focal point of the massive redevelopment infrastructure project including and behind London’s King’s Cross St Pancras joint-stations, and which has seen an influx of young, tech, growth-driven players in the UK’s leading industries, including the Guardian and YouTube. Gary is a fair-haired, slim fellow, with a sort of calm, studied yet intense complexion that mirrors the composed enthusiasm of his speech. Yet his hands are constantly at work, now building, now waiting, now describing a wide arc that crosses his brow and catches the light that sluices through the vast skylight windows above our heads.

Gary graduated from one of CSM’s UAL sister colleges 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 ten years ago, achieving an honours degree in Design and Advertising. At that point his passion was largely directed towards graphic design, and he describes himself as having been excited about type settings, layouts and the like. But the energy he has now he had back then, and while studying he started some music club nights, including grime, dubstep and UK garage music, reflecting some of the powerful music genres emerging in his hometown Stevenage at the time. These also included reggae, roots, dub, and jungle. It was the era of New Rave, and everyone wore bright colours, and big bold prints. He ran two nights, Short Back and Sides, and Cashpoint, both in Dalston, which was vastly different from the gentrified art hub it now represents. But he didn’t stop there.

‘I then set up an events company called Pink Gold, which did fashion shows and fashion networking nights. The biggest thing we did was a three-day festival at Roundhouse [arts centre in Camden] for underprivileged under 25 year olds, which allowed them to show their talents. It was cool, we had some big artists come along, but then I got bored really. I found it all a bit difficult and I forgot about the things I really cared about.’

Next was a job at a young creative agency called Youth Club, and at the same time Gary worked for the Photo Youth Music Culture Archive, which showcased to Gary styles such as Teddy Boys, Punk, and Rockers. I notice the leather jacket he’s taken off and laid down on the bench next to him. It is a hot day. The jacket is black, and daubed in white text. ‘This is my dad’s old jacket from the ‘60s. My brother wrote on it in the ‘80s.’

But onto fashion, where Gary had always had an interest, an interest which developed somewhat through his work in image making, and which was honed and targeted more as he moved towards more art direction through his work for Fee Doran at Mrs Jones. In his later 20s he went on to join Rapha, the design-forward cycling brand, where he was Artistic Director for several years, leaving towards the end of 2017. From a young age Gary liked BMX biking and dirt jumping, and even worked as a bike mechanic alongside his club nights.

‘I don’t know exactly why, but there was something really special about the period 2005 - 2009 at the cycle shop. We had Graham Raeburn, who was studying at the Royal College of Arts, and who then became the head designer at Rapha. And then gradually we all got really into Rapha through our love of cycling. There were some amazing people that came from this little bike shop at that time. And there was another guy called Kiel Rodgers who recently won the Melbourne Young Fashion Design Award. He’s worked for Jeremy Scott and Comme des Garcons. And now he’s doing his own thing, and he has set up his own brand called Garbage TV.’ But entering the world of Rapha, which represented a more corporate environment, allowed Gary to gain an understanding of how to grow a business. I ask about this transition.

‘Because I come from a working class background, I’d always been told by my Dad that if you really want to succeed in life, you need to work for yourself and not for other people. I’d always had a strategic mindset, but I had previously never really applied it to growing a business.’ But working at Rapha wasn’t about selling out to the mechanical strategies of the cold corporate world. ‘‘I love Rapha, and I still feel part of the family there. I still talk to them about creative output, and still sometimes do talks there.’ Perhaps this is the root of Gary’s pursuit of creativity, because it seems inextricably correlated to the pursuit of learning. No one pursues an MA at somewhere like Central Saint Martins, from what I’ve seen anyway, if this isn’t the case.

‘I got married last year. I was making big changes. I decided to leave Rapha, and didn’t know what I was going to do after that. In the end I got employed by Goodhood, and got on really well with Kyle Stewart and the other guys there, and became their creative director. I had a great job, and I could relax a bit, but then I had a sudden moment of realisation, which was like my Dad’s voice in the back of my mind. I was 32 at the time and I was still in a retail environment. So I decided to travel around Korea. I could then reflect on what I really liked, and I’ve always really wanted to do an MA, so I applied and got in, and it was an amazing decision.’

And according to Gary, it was only ever going to be Fashion Communication. He sensed in his portfolio and experience a lack of cross-collaboration, and how to ask key creative questions but without the singularity of, say, e-commerce. Gary’s now starting a brand with his wife, herself a shoe-designer, and he has already starting working on a business plan which looks to secure funding and hold an exhibition at the end of the year, showcasing six young Korean shoe designers. For Gary there’s a visionary approach to the exhibition of creative values within collaboration, in this case doing away with the stereotypes of copycat catwalk culture. ‘The thing is, the world is looking at South Korea, in a fashion context, because of their styling. No one’s styling clothes the way Koreans are. There is a whole subculture of DIY fashion. If they can’t get brands like Supreme, rather than buying fakes from a market, they will create their own garment based on Supreme influences.’ I sense inspiration in Gary’s Korean journey, and we discuss his experience of the generation gap there, the reality that rather than engaging in punk subcultures the middle- and older-aged generation were working on the land.

‘But now we’re entering a generation of thinkers and creators. They’re knocking down a lot of buildings and building new interesting ones. That’s the message I want to portray with this exhibition. I’m looking forward to doing it. Everyone is really hyped about being a part of it, and we will see where it goes.’

Closer to home, where else does Gary find his artistic and creative inspiration? First and foremost, Stevenage is a unique place, a place where one notices many things, and where now coming with a new perspective, a new lens, Gary finds a sort of anthropological conceptual perspective through questions whose answers lay the building blocks for new ideas. ‘What makes this place what it is? Is it its architecture, is it the fact that it’s all concrete, or is it the people? It’s all these different elements that make it.’And he sees a similar inspiration in the six designers with whom he’s collaborating on the year-end exhibition. ‘I’ve noticed in their work inspirations from Elephant & Castle, Dalston, Peckham, or wherever they live. Some of them might not even be aware of this.’

And of course on a more pragmatic level, London is the place where Gary meets like-minded people and creates collaborative relationships. According to him, from this perspective it’s the best place. ‘No doubt about it’. Of course there are other cities, Sheffield, for example, that are seeing the emergence of creative hubs, artistic quarters, and such, but even here, ‘Sheffield connects to London, and London connects to the world.’

And so as we wander through this sort of industrialised avalanche of art that almost pours out at you on every corridor, on every staircase at this frankly gorgeously reworked warehouse of learning, from the shape of the lights, to the black lonely school-chair sitting dusty by the wall, I begin to realise that Gary’s search for the new, the bright, the vibrant, that youthful, creative element that so often comes through partnership, through collaboration, is a precious, invaluable part of an engaging and frankly inspiring man.

‘I just try to be authentic. I like to think I’m quite honest. And I’m a sociable person, which I think I have to be in my position. I’m a definite collaborator.’